알기 쉬운 경제 19탄: 현금 없는 사회, 화폐의 미래는 어디로 향하는가?
1. 서론: 지갑 속 현금이 사라지는 시대
언제 마지막으로 현금 다발을 세어 보았는가? 스마트폰 간편 결제와 신용카드가 일상화되면서 우리는 점차 '현금 없는 사회(Cashless Society)'로 나아가고 있다. 식당, 카페는 물론 전통 시장에서조차 QR코드 결제가 익숙한 풍경이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결제 수단의 전환을 넘어, 우리 경제와 사회 전반에 걸쳐 거대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현금 없는 사회란, 모든 대금 결제가 신용카드, 간편 결제 서비스 등 현금을 대체하는 전자적 수단으로 이루어지는 사회를 의미한다. 일본의 경우 2025년 비현금 결제 비중이 42.8%에 달했으며, 2025 오사카·간사이 엑스포는 사상 최초로 완전 캐시리스로 운영될 예정이다. 이처럼 세계 각국은 저마다의 속도로 현금 없는 사회를 향해 나아가고 있으며, 이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 되었다.
본 글에서는 현금 없는 사회가 가져올 경제적 효용과 사회적 문제점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등 미래 화폐의 가능성을 탐색하며, 2026년의 경제 환경 속에서 우리가 맞이할 화폐의 미래를 전망해 보고자 한다.
2. 현금 없는 사회의 명과 암
동전의 양면처럼, 현금 없는 사회로의 전환 역시 뚜렷한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효율성과 투명성이라는 밝은 측면이 있는 반면, 디지털 소외와 사생활 침해라는 어두운 우려도 공존한다.
2.1. 빛: 효율성과 투명성의 시대
현금 없는 사회의 가장 큰 장점은 비용 절감과 효율성 증대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동전을 만드는 데만 연간 수백억 원의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 실제로 2022년 한 해 동안 동전 6억 개를 제조하는 데 539억 원이 소요되었다. 현금 사용이 줄면 화폐 발행 및 관리에 드는 막대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또한, 개인과 기업은 현금을 관리하고 정산하는 데 드는 시간과 노력을 아껴 생산적인 활동에 집중할 수 있다.
모든 거래 기록이 전자적으로 남게 되면서 경제의 투명성이 획기적으로 높아진다. 이는 탈세, 비자금 조성, 뇌물 등 지하경제를 양성화하는 데 기여하여 국가 재정 건전성을 높이는 효과를 가져온다. 또한, 축적된 결제 데이터는 정교한 경제 분석과 정책 수립의 기반이 되어 경제 안정에 기여할 수 있다.
2.2. 그림자: 소외와 감시의 우려
기술 발전의 이면에는 언제나 소외되는 이들이 존재한다. 현금 없는 사회는 디지털 기기 사용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이나 계좌 개설이 어려운 저소득층, 노숙인 등 금융 소외 계층을 더욱 고립시킬 위험이 있다. 이들은 현금 결제가 불가능한 상점에서 생필품 구매조차 어려워지며, 경제 활동에서 배제될 수 있다.
실제로 한 조사에 따르면 70대 이상의 현금 사용 비중은 32.4%에 달하며, 월 소득 100만 원 미만 가구의 경우 그 비중이 59.4%까지 치솟는다. 이는 디지털 결제 환경이 보편화될수록 이들의 경제적 고립이 심화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기술의 편리함만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모든 사회 구성원이 불편 없이 금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현금 사용 선택권'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더불어, 모든 거래 기록이 남는다는 것은 사생활 침해와 빅브라더 사회에 대한 우려를 낳는다. 국가나 거대 기업이 개인의 소비 패턴, 이동 경로 등 모든 정보를 수집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심리적 불안감을 야기한다. 또한, 지진, 전쟁, 대규모 정전이나 통신 장애 발생 시 전자 결제 시스템이 마비될 경우 사회 전체가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위험 요소이다.
3. 새로운 화폐의 등장: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현금 사용 감소와 민간 디지털화폐의 등장에 대응하여 각국 중앙은행은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CBDC)'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CBDC는 중앙은행이 직접 발행하는 전자적 형태의 화폐로, 기존의 현금과 동일한 법적 가치를 지닌다.
CBDC는 블록체인, 인공지능과 같은 혁신 기술을 기반으로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을 가속화하는 핵심 요소로 주목받고 있다. 이는 기존 지급결제 시스템의 안정성을 보완하고 새로운 금융 서비스의 등장을 촉진할 잠재력을 가진다.
한국은행 역시 미래 지급결제 환경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비하기 위해 CBDC 연구를 활발히 진행 중이다. 특히 2025년 4월부터 시작된 '프로젝트 한강'이라는 이름의 CBDC 활용성 테스트는 주목할 만하다. 이 테스트는 국민은행, 신한은행 등 주요 시중은행과 협력하여 일반 국민 10만 명을 대상으로 예금 토큰을 발행하고, 이를 실생활에서 결제 수단으로 사용해보는 민관 공동 파일럿 테스트이다.
이 테스트의 핵심 중 하나는 CBDC의 '프로그래밍 기능(스마트 계약)'을 활용한 디지털 바우처 실험이다. 예를 들어, 정부가 지급하는 육아 바우처를 CBDC로 발행하면, 해당 자금이 지정된 육아용품점에서만 사용되도록 자동으로 제어할 수 있다. 이는 정책 자금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혁신적인 방안으로, 복지, 교육, 소상공인 지원 등 다양한 공공 정책 분야에 적용될 수 있다.
4. 2026년 경제 전망과 화폐의 미래
2026년 세계 경제는 인공지능(AI) 기술의 확산, 디지털 전환의 심화, 그리고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의 정착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변화는 화폐의 미래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4.1. 인공지능(AI)과 디지털 전환의 가속화
2026년 경제의 최대 화두는 단연 인공지능(AI)이다. 미국경제학회(AEA)에서도 AI가 생산성, 노동시장, 금융에 미치는 영향이 핵심 주제로 다뤄질 만큼, AI는 경제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금융 분야에서 AI는 신용 평가, 사기 탐지, 자산 관리 등에서 이미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며, 디지털화폐와 결합하여 더욱 정교하고 개인화된 금융 서비스를 창출할 것이다.
생성형 AI 기술의 발전은 IT 부서의 역할을 변화시키고 있으며, 기업들은 AI 및 데이터 역량 강화와 업무 자동화에 집중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디지털화폐는 자동 결제, 스마트 계약 실행 등 프로그래밍 가능한 특성을 통해 기업의 재무 관리와 공급망 금융을 혁신하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
4.2. ESG 경영과 포용적 금융의 과제
2026년에는 ESG 경영이 기업 생존의 필수 과제로 자리 잡을 것이다. 투자자들은 단순한 선언을 넘어 실질적인 데이터와 성과를 요구하고 있으며, 기업들은 내실 있는 ESG 경영을 통해 자본 시장의 신뢰를 확보해야 한다.
현금 없는 사회로의 전환 과정에서 ESG의 'S(사회)' 측면, 즉 포용적 금융(Financial Inclusion)은 중요한 과제가 된다. 앞서 언급했듯 디지털 소외 계층이 새로운 금융 시스템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정책적, 기술적 해결책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이는 단순히 취약 계층을 보호하는 것을 넘어, 사회 전체의 안정성과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길이다. CBDC 설계 시 오프라인 결제 기능을 포함하거나,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사용자 인터페이스(UI)를 개발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5. 결론: 기술과 사람이 공존하는 화폐 생태계를 향하여
현금 없는 사회로의 이행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연의 과정이다. 이는 우리에게 비용 절감, 투명성 증대라는 선물을 안겨주지만, 동시에 디지털 격차, 사생활 침해라는 숙제도 남긴다. CBDC와 같은 새로운 형태의 화폐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은 금융 시스템을 구축할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중요한 것은 기술의 발전에 매몰되지 않고 '사람'을 중심에 두는 것이다. 2026년을 향해 가는 지금, 우리는 효율성과 포용성 사이의 균형을 맞추고, 모든 사회 구성원이 새로운 화폐 생태계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 화폐의 미래는 단순히 기술의 진보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가치를 우선하며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 가느냐에 달려 있다.
